2011. 2. 14. 17:09ㆍ산행일기
- 산행일시 : 2011년 2월 13일
- 산행코스 : 성판악코스 - 백록담 정상 - 관음사코스
- 산행동무 : 없음
1월15일 1차 연기, 1월29일 2차 연기, 2월12일 3차 연기.....
한라산 일정을 잡아 놓기만 하면 제주에 폭설이 내려 한라산 등반이 통제되기를 세차례, 이번에는 하루 뒤로 미루어 항공편을 예약하려는데 돌아오는 편에 자리가 없어 대기자 명단에 올려 놓았다.
12일 오후 느즈막히 예약이 확정되었다고 문자가 왔다.
저녁 9시가 넘는 늦은 시각의 것이지만, 일단 돌아 오는 항공편이 확보된 이상 벼르고 벼르던 한라산을 가기로 결심한다.
작년에 성판악에서 올라가 봤으니 이번에는 관음사코스로 올라가 보려고 계획하였으나, 제주행 비행기 안에서 계획을 급수정한다.
상대적으로 사람의 왕래가 적은 관음사 길이 안그래도 힘든 길인데 어제의 폭설로 쌓인 눈 때문에 러셀이 되어 있지 않을 것 같은 예감에 들머리를 성판악으로 바꾸어 간다.
나중에 관음사로 하산하면서 역시 탁월한 판단을 한 나 자신을 스스로 칭찬해 주며....
성판악으로 올라가는 차도도 눈 때문에 미끄러워 택시가 굼뱅이 운행을 한다.
8시 30분경 성판악휴게소에 도착하여 산행준비를 마치고 출발하는데... 등산객의 숫자가 장난이 아니다.
어제 못 올라간 사람들까지 한꺼번에 다 몰렸는가? 산악회 단체팀들 사이에 끼어 나 홀로 출발을 한다.
날씨는 잔뜩 찌푸린 하늘에 흐리멍텅해 있었지만, 항공기 착륙 직전에 구름을 뚫고 내려 가는 것을 봤던지라 내심 고지로 올라가면 하늘이 열릴 것이라고 짐작은 하고 있었다.
출발한지 얼마 지나지 않아 눈 속에 파묻힌 산수국(?)을 발견 했다.
멍청한 날씨에 별 생각없이 앞사람 엉덩이만 바라 보며 전진하는데 갑자기 앞서 가던 아지매들의 소프라노 환호성이 터진다.
뜬금없이 눈꽃이 나타난다.
속밭대피소에 도착한다.
간단하게 던킨도너츠 한개 빼 먹고 부지런히 올라 간다.
진달래대피소에 가까와지면서 하늘이 열리기 시작한다.
작년,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던 눈보라와 안개를 뚫고 올랐던 기억에 의하면, 진달래대피소는 오솔길 오른쪽으로 살짝 빠져 들어갔던 곳인데.....이렇게 넓고 멋진 곳에 위치해 있는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 곳에 진달래가 만개하면 정말 장관이겠다.
여기서 파는 컵라면 사먹기가 너무 어수선해서 집에서부터 가져온 뜨거운 물을 컵라면에 부어 간단히 요기를 한다.
금줄 넘어 가지 말라고 방송으로 연신 외치던 대피소 직원과 시끄럽다고 시비를 거는 한 등산객과의 소란을 뒤로 하고, 나는 내 갈 길을 간다.
정상을 향해....하얀 눈밭을 개미떼처럼 줄지어 올라 간다.
안그래도 사람이 많아 밀리는데, 몇몇 성질 급하신 분들... 좁은 길을 뒤에서 신경질적으로 막 밀치면서 올라와 추월하고 끼어드니 더 정체가 된다.
초보 운전 한사람이 1차선에서 룰루랄라 하면서 가는 상황에 추월하는 것이라면 이해가 되지만, 명절 귀성길에 차가 몰려서 정체되는걸 혼자 불평불만에 가득 차서 갓길이건 뭐건 닥치는대로.. 저 혼자만 살겠다고 달려드는 격이다.
기온은 차갑지만 기분좋게 따뜻한 햇살이 내려 쪼이는 정상 부근의 날씨, 폭신한 구름 위에서 한숨 자고 싶다.
덕유산은 곤돌라 타고 올라 가는 방법이라도 있지....
4~5시간을 오로지 걸어서 가야만 하는 한라산에 어린 아이들부터 청바지에 운동화를 비닐봉투고 감싸고 아이젠 차고 올라가는 아저씨, 쇼핑백에 먹을 것 바리바리 싸가지고 가는 아지매들까지.... 정상부근에 발디딜 틈이 없이 사람들로 가득하다.
작년엔 백록담 바로 위에서 백록담을 보질 못했는데, 이 날은 보인다. 그것도 잘~~~
계속 올라 온다. 올라 왔던 사람들도 대부분 왔던 성판악 길로 하산을 한다.
난 관음사 길이 훨씬 멋있던데....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간신히 옮겨 관음사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한다.
조금 내려가는 척을 하다 못내 아쉬워서 갓길에 자그마한 아지트를 발견하고 그 속으로 들어가 또 한참을 내려다 보며 시간을 보낸다.
배낭 다 풀어 놓고 느긋하게 있는데, 갑자기 왠 아주머니 한 분이 뛰어 들어 오면서 여기서 뭐하고 있냐고 따지듯이 물어 본다.
숨어서 구름과자도 한 개 만들었더 터이라 미안한 마음에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쉬고 있는 중이라고 하니, 다짜고짜 빨리 나가란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자기가 뭔데? 나가라 말라 그럴 것 까지야 있나 싶어 한바탕 전쟁을 치를 준비를 하는데.....
그 아주머니 엄청 급하셨는지....찬찬히 설명하지도 못하고 바지를 내리면서 빨리 나가 달랜다...ㅋㅋ
진작에 그리 말씀하시지.....
가다가 또 멈추고...하기를 서너번...
백록담의 옆태를 다시 올려다 본다.
사람들이 주는 먹이에 길들여진 까마귀들이 유난히 많이 보이던 곳.
관음사코스로 올라 오지 않길 정말 잘했다고 느꼈다.
급경사 길에 눈도 제대로 다져지지 않아 다리가 푹푹 빠지는 구간이 많았다.
성판악코스처럼 등로도 뚜렷하지 않아 발자국이 여기저기 마구 널브러져 있었다.
경남산악연맹인가 하는 단체에서 적설기 훈련을 하는 중이라고 한다.
아마도 키 작은 소나무가 눈에 푹 파묻혀 가지 끝부분만 살며시 튀어 나온 것이리라.
등로에서 발걸음 옆으로 굴러 떨어진 조그마한 눈뭉치들이 만들어낸 그림이다.
지나가는 누군가가 왕관바위라고 한다.
삼각봉대피소에서 보온도시락을 마지막으로 까먹고...
삼각봉대피소 앞에 있는 봉우리니까 삼각봉이겠지?
삼각봉을 지나면서 다시 구름 속으로 들어간다.
위에서 너무 시간을 많이 보내서 해가 져 어둑해질 무렵 하산을 완료했다.
어차피 비행기 시간은 9시 이후인데...일찍 공항에 가면 혼자서 뭐 하겠는가?
마지막 남은 한대의 택시기사 한 분과 요금을 놓고 기싸움을 시작한다.
2만원 달라는 기사님과 작년에 1만원에 갔다는 나....
이후 약 30분간의 침묵 끝에 저 쪽에서 만7천원에 협상이 들어 온다. 내심 만5천원까지는 생각하고 있었는데...
이제 더 이상 내려 올 사람도 없는데, 그냥 먼저 내려가시라 했더니 만5천원 콜 받으신다.
이 한장 때문에 기를 쓰고 올 겨울 한라산을 간 것이 아닌가?
작년 한라산의 굴욕사진을 이제는 새롭고 산뜻한 것으로 대체하게 되었다.
게다가 덤으로 좋은 경관까지 보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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