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4. 14:26ㆍ산행일기
- 산행일자 : 2016년 2월 3일
- 산행코스 : 영실휴게소-윗세오름-만세동산-사재비동산-어리목
- 산행동무 : 피터팬, 헬레나
27일 폭설에 의한 통제로 취소된 한라산행을 한주 미루어 다시 도전하자고 하는 피터팬님의 제의가 있다.
제주 폭설 때 비록 가서 보지는 못했지만, 매스컴과 인터넷을 통해 접했던 환상적인 설경이 이미 머리에 박혀 있는데, 과연 그에 필적할 만한 풍경이 한주일 후에도 남아 있을까? 순간 갈까? 말까? 하는 고민에 빠지기 시작한다.
어디선가 들은 말이 있다.
결혼은 해도 후회, 안해도 후회이니 이왕이면 해보고 후회를 하는게 낫다고....
그리고 기대가 크면 실망이 큰 법이라는 말도 떠오른다.
이 두가지를 조합해 보니 답이 나오더라.
지금 한라산 풍경이 궁금하면 혼자 인터넷 뒤적거리며 다른 사람들이 찍어 단편적으로 올린 사진에 쓸데없는 상상을 더하지 말고 직접 가서 너의 눈으로 확인하고 오라고....
마침 헬레나님도 비슷한 시기에 윗세오름에 오를 계획이 있다는 정보를 모여인을 통해 줏어 듣고 함께 하자고 의견을 전했더니 흔쾌히 동행해 주시고...
제주공항에 내려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이동, 한시간 마다 오는 영실행 시외버스를 기다리며 어묵 몇꼬치로 아침식사를 대신한다.
평일인데도 산에 가는 사람들이 왜 그리 많은지... 입석까지 꽉 차서 더 이상 손님을 태우지 못하고 문을 닫는다.
깜빡 잠이 들었는데, 어찌나 곤히 잤는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차창에 뿌옇게 서린 김을 보고 옆자리의 헬레나님께 왜 사방이 안개로 자욱하냐고 잠꼬대 비슷한 소리를 다 했다.
버스가 어리목입구를 지나는데 창밖이 은색 동화의 나라가 되어 있었다.
1100고지 부근은 상고대가 절정을 이루고, 도로 양옆으로 은빛 물결이 양옆으로 휙휙 스쳐 지나가는 그 맛이란....
여기가 이 정도 장관인데, 산위로 올라가면 얼마나 더 멋질까? 오늘 너무 좋아서 하산 못하는거 아닐까? 지금 풍경도 충분히 멋지지만 좀 있다 버스에서 내리면 훨씬 더 멋진 풍경이 기다리고 있을테니 그 때 많이 찍지 뭐~~~ 이런 행복한 생각 속에 휘파람 불며 앉아 있는데....
어찌 고도를 높일수록 상고대는 점차 약해지고, 영실탐방안내소에 도착하니 주변이 휑~~ 하다.
아까 버스에서라도 한두장 담아 둘 것을....
나중에 곰곰히 분석을 해보니 고도에 따른 습도 변화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영실과 그 위쪽 평원의 적설상태는 이미 알고 있었지만, 기대하지 않았던 상고대 때문에 부풀었던 가슴이 다시 쪼그라 드니 안그래도 별 볼 일 없던 설경이 더욱 볼품없어진다.
어리목에서 하차하여 그쪽으로 올랐어야 했는데.... 계속 아래쪽 상고대 풍경이 눈에 밟힌다.
오늘 산행 진도 하나는 참 잘~ 나간다.
내가 걸었던 영실코스 중에 오늘 최고로 빠른 시간에 올랐다.
헬레나님과는 함께 산길에서 제대로 발을 맞춘 것도, 사진을 찍은 것도 처음인 듯 하다.
만세동산 전망대 위에서....
윗세오름 휴게소에서 컵라면과 샌드위치, 샐러드와 과일 등으로 배불리 점심을 먹고 남벽분기점까지 다녀오기로 한다.
하지만, 거기까지 가는 것이 오늘은 큰 의미가 없겠다는 생각을 하며 걷던 차에 맨 앞에 걷던 피터팬님이 뒤돌아서 돌아가자고 하신다.
두분이 부득 가시겠다 해도 나는 돌아 가려고 눈치만 보고 있던 판이었는데, 냉큼 콜!!
지체없이 곧바로 어리목 방향으로 하산 시작.
사람이 들어가야 풍경이 산다며 후다닥 앞으로 나가시는 피터팬님.
없는 것 보다 훨씬 좋습니다~~~^^
어찌 고도를 낮출 수록 눈꽃이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이곳 어리목의 나무들은 극명한 양면성을 띄고 있었다.
그늘이 지는 산아래쪽 면은 눈뭉치들이 채 녹지 않아 볼만한 장면을 연출하는 반면, 해가 계속 비추는 반대편 산위를 향하는 면은 눈이 거의 남지 않아 거뭇하게만 보인다.
사재비동산을 지나 숲으로 들어오니 정오가 훨씬 지난 시각임에도 상고대와 눈꽃이 남아 있었다.
아침에 어리목에서 내리지 못한 아쉬움이 더욱 진해졌던 순간...
모여인한테서 얻어 들은 정보가 있어서, 헬레나님께 조릿대의 초록색을 잘 부각시켜서 한 번 찍어 보시라고 권했는데 어찌 담으셨는지 궁금하다.
이제 3시 밖에 안되었는데.... 벌써 하산을 다 했네~~
산행 마치고 시간이 남아 고민해 보긴 난생 처음이었다. ㅎㅎ
민주지산 때에 못먹은 방어회 한접시 먹고, 공항에 가서 비행기 시간을 변경해 달라고 하니 무려 한시간 반이나 앞당겨진 편으로 바꾸어 준다.
지난 주 못봤던 복면가왕을 핸드폰으로 들여다 보다가... 졸다가... 비몽사몽간에 착륙하는 것도 모르고 쿵!!하는 소리에 혼비백산하고 정신차려 보니 김포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