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2. 2. 11:21ㆍ산행일기
- 산행일자 : 2016년 1월 30일
- 산행코스 : 황룡사-삼마골재-삼도봉-석기봉-민주지산-족새골-황룡사
- 산행동무 : 레테, 피터팬, 산여인, 샷마스타
1월27일로 계획했던 영실~어리목 산행을 며칠 앞두고 제주에 유례없는 폭설이 내려 그곳은 재난 일보직전의 상황까지 벌어지고 있는데, 나는 사회 분위기상 대놓고 좋아하진 못하고 숨죽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윗세오름에서 어마어마한 설경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이 부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인생사 새옹지마라고 했던가... 과유불급이란 말이 더 어울리려나...
너무 많은 눈이 내리는 바람에 보통은 기상청 특보가 해제 후 하루만 지나면 풀리던 한라산출입통제가 이틀이 지난 27일에도 계속 이어지고, 눈물을 머금고 산행계획을 취소하여야만 했다.
그리고 산행하기로 했던 당일에는 사무실에 앉아 국립공원 CCTV를 통해 펼쳐진 장면과 뉴스에서 올라오는 사진을 통해 놓친 설경에 대한 위안을 삼고 있었다.
그렇게 아쉬움을 삼키며 하루를 보내고, 다음날 민주지산 주말산행 제안이 단체톡방에서 이야기 되고 있다.
산복하면 산여인!! 게다가 요 근래 들어서는 정보력도 겸비된 듯하다.
특히 겨울철 산행은 산여인님을 따라 가면 최소한 기본은 한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뒤도 안보고 바로 콜!!
황간IC를 빠져 나와 국도를 달리는데, 어젯밤 눈이 내린 흔적이 도로에 아직도 많이 남아 있고 주변에 보이는 산풍경이 환상적이다.
황룡사 입구에 도착하니 주변이 온통 밀가루를 뿌려 놓은 듯 하고, 사람들 마음이 바빠진다.
오늘 산행거리가 제법 되고 쉽지 않은 산이라고 사전주입을 받아 대포는 배낭에 넣고 스틱과 핸드폰 카메라로 장비세팅을 했다가, 나도 급변심... 스틱을 접고 대포로 세팅을 바꾼다.
오늘 기온이 낮지는 않은지라, 나무에 걸린 눈꽃들이 빠르게 녹으며 후두둑 떨어진다.
삼거리에서 피터팬님이 기다리고 계신다.
좌측 삼도봉 방향으로 올라 우측 민주지산 방향으로 하산할 계획이라고 하신다.
설경은 너무나 멋진데...
본격적인 오르막이 시작되고, 아이젠 바닥에 습기 머금은 눈이 달라 붙어 뭉치니 발걸음이 꼰독꼰독 자꾸만 틀어지고... 체력이 달리기 시작한다.
그래서 다시 스틱을 펴고 대포는 배낭 속으로...
삼마골재.
이즈음에서 주변 풍경은 눈꽃에서 상고대로 바뀌기 시작하는데... 더불어 구름 속으로 갇히기 시작한다.
어느 두 분은 일없이 이것이 눈꽃이다 상고대를 놓고 싸우기 시작하시고... ㅋㅋ
삼도봉 도착, 이곳에서 떡만두국 점심상을 펼친다.
한시간을 훌쩍 넘게 커피까지 마시고 레테님과 샷마스타는 하산팀으로, 나와 피터팬님, 산여인님은 원래 계획대로 민주지산까지 고~ 고~
삼도봉에서 한 200미터쯤 내려 왔나?
내내 아이젠에 달라 붙던 눈덩어리 때문에 발바닥이 불편했는데 왼쪽발이 편하다는 것을 느끼고 내려다 보니 이런!! 아이젠 한짝이 탈출했다.
뒤돌아 본 시야에는 보이질 않고... 방금 슬슬 미끄러지며 편하게 내려온 내리막이 뒤돌아 올려다 보니 깝깝하고....
에잇!! 한짝이 있으니 이걸로 오늘 하루 버티자고 결심했는데, 산여인님이 성큼성큼 그 길을 걸어 올라 간다. 배낭도 내려 놓지 않고...
나중에 말하시길... 내가 따라 올 줄 알았는데 그냥 놔두라고 말만 하고 제자리에 서있기만 하더라나? ㅋㅋㅋ
옆에서 피터팬님은 그 여인이 운동량이 많이 부족한 분이니 괜찮다며 거들어 주시고...
잠시 후, 결국은 아이젠을 찾아서 들고 내려오는 산여인님, 삼도봉까지 다시 올라가 찾아 왔다고~~
고맙기도 하고, 경이롭기도 하고.... 그렇다.
석기봉까지 왔는데 여전히 주위는 구름 속에 한치 앞이 제대로 보이질 않는다.
이곳에서 조망하는 상고대 깔린 능선의 풍경이 멋지다고 하는데 그저 머리 속으로 그 모습을 상상만 해 본다.
발빠른 두 분을 따라 가려니 쌔가 빠진다.
나는 사진도 거의 안찍으며 열심히 걷기만 하는데도 잡히질 않고... 가끔 시야에 들어 오는 모습은 주변을 기웃거리면서 여유롭게 사진 찍는 모습이 보이는데, 그리고 나면 순식간에 사라진다.
인천의 모산악회에서 단체로 오신걸 보니 한동안 못 본 가을향기님이 어찌 지내시는지 궁금해진다.
부지런히 발을 놀려 하산을 마치고 나니, 아침에 환호를 받았던 눈부신 설경은 일장춘몽처럼 사라지고 다른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