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12. 8. 13:43ㆍ산행일기
- 산행일자 : 2015년 12월 5일
- 산행코스 : 천동매표소-천동쉼터-천동삼거리-비로봉 (역순으로 하산)
- 산행동무 : 피터팬, 수가, 펭귄, 나비공주
언젠가부터 주말이 다가오면 산행을 해야겠다는 생각과 거기서 어떻게든 빠져 나갈 구실을 만드는 두명의 내가 꿈틀댄다.
샤워할 때마다 거울에 비춰지는 모습에서 옆구리 양쪽으로 뭔가가 두리뭉실하게 비집고 나오는 것을 보고는 대책을 마련해야겠다는 절박감에 사로잡혀 있는데, 카톡에서 소백산 어쩌고 저쩌고 이야기가 오간다.
순간, 추울텐데... 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몸상태가 어지간하지 않은지라 무조건 콜을 받아 놓고는... 너!! 이번 주엔 빼도 박도 못해!! 하면서 다짐을 한다.
산행 하루 전날인 금요일에 한 블친님께서 소백산에 올라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휘청대는 동영상을 보내 주신 것을 보고, 잔뜩 긴장하며 온갖 장비들을 배낭에 꾸역꾸역 쑤셔 넣는다.
새로 뚫린 평택제천고속도로를 충주에서 올라 타고 시원하게 달리다가 천등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휴게소는 영~~ 아니다.
하지만, 영동고속도로 정체가 심한 스키시즌엔 안성까지~~ 활용도가 높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여태 천동에서 산행시작하면서 주차료 외에 입장료를 낸 적이 없는데, 올봄 이후로 산행객들한테도 입장료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입구 관리인이 말하는 태도가 얼렁뚱땅, 불성실해 보여서, 뒤끝이 길고 까칠하기로 소문난 내가 그냥 넘어갈 리가 없다.
하산길에 굳이 공단사무실에서 들러 물어 보니 맞다고... 지자체에서 징수하는 것을 공단에서도 어찌 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소백의 위쪽 상황을 궁금해 하면서 서서히 고도를 올린다.
눈길이지만 아이젠도 필요없을 정도로 편안한 길에 산행객도 그다지 많지 않아 조용한 느낌이 어제 동영상으로 보았던 정상의 난리통과는 천지 차이이다.
지금은 폐쇄된 천동쉼터가 가까워지면서 제법 볼만한 눈꽃풍경이 시작되고 있고, 더불어 저 위에서는 웅~ 웅~ 거리며 바람이 울어대는 소리가 간간히 들린다.
가을에 대한 미련을 아직 내려 놓지 못한 나무가지는 홀가분한 다른 나무가지에 비해 훨씬 더 무거운 짐을 지고 축 늘어져 있다.
천동쉼터에 도착하여 하늘을 보니 희뿌옇게 안개인지 구름인지.. 하여튼 보이는 것이 없다.
소백의 겨울 칼바람을 두차례 맞아 봤는데, 아무런 반항도 못하고 동네 불량배들한테 둘러싸여 몰매를 맞는 느낌이었다.
천동삼거리에 가서 능선 위로 손내밀어 보고, 여차하면 비로봉 정상은 포기할 생각이 점차 굳어져 가고 있다.
정상에 가까워질수록 눈꽃과 상고대는 점점 두꺼워지고... 볼만한 풍경인데, 딱 하나 파란 하늘이 아쉽네~~
천동삼거리에 도착했는데, 기다리고 계실 것으로 예상한 피터팬님과 나비공주님은 보이질 않고...
뒤따라 오고 계신 펭귄님과 수가님은 아마도 눈꽃사진 촬영하신다고 늦으실 것 같고...
살짜쿵 능선바위에 올라 정상 쪽을 바라보니 역시나 아무 것도 보이질 않는다.
하지만, 바람이 생각보다 견딜만 하고, 몸이 자꾸 식는 느낌이 들어 슬슬 정상 쪽으로 걸어가 보기로 한다.
여차하면 되돌아 오면 되지.. 뭐~~~ 하면서.
정상에 가까와질수록 바람의 강도가 점점 세지고, 세찬 바람에 구름이 춤을 추면서 순간적으로 하늘이 열렸다 닫혔다를 반복하는 것을 보니 가슴이 마구 뛰기 시작한다.
하늘이 열리는 순간, 끼고 있던 두꺼운 장갑을 벗고 배낭 옆에 꼽힌 핸드폰을 꺼내 카메라앱을 실행하고 찍을 준비를 하면 어느새 다시 구름이 몰려와 뒤덮고...
또 열릴까 하고 기다리다 보면 손이 시려워서 못참고 다시 장갑을 끼면 또 파란 하늘이 잠깐 보이길 반복하다보니 오기가 생긴다.
칼바람을 맞으며 정상에 도착하니 아직 정신이 또렷하고, 여러명이 그 정상석 인증을 하고 계신 것을 보면 확실히 오늘의 소백바람은 중급정도에 지나지 않는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정상을 찍고 다시 천동삼거리로 되돌아 가는데, 하늘이 열리는 빈도수가 훨씬 많아진다.
그와 함께 펼쳐지는 소백평원의 설경은 그야말로 환상적이었고, 내가 본 겨울 소백중에 최고였다.
손시린 것도 잊고, 바람에 몸이 휘청대는 것도 별로 부담스럽지가 않다.
대포카메라 가지고 올걸~~~~
환타스틱, 다이나믹한 소백설경에 취해 정신을 못차리고 있다가, 천동삼거리로 돌아와 숨을 돌리고 나니 이젠 뱃속에서 밥달라고 난리가 났다.
피터팬님이 준비해 오신 방풍보온텐트 안에 둘러 앉아 늦은 점심을 준비하는데, 아직 익히지도 않은 차가운 생어묵이 왜 그렇게 맛있던지... 주 메뉴가 준비될 때까지 계속 집어 먹는다.
눈에 파묻힌 발끝이 약간 시린 느낌이 있었지만, 추운 날씨에 장갑을 벗고 젓갈질을 여유롭게 할 정도로 포근함을 느끼게 해 준 텐트는 이번 산행에 아주 유용하게 사용되었다.
커피까지 마시고 본격적인 하산을 준비하는데, 하늘이 거의 다 열리고 설경은 햇살을 받아 더욱 반짝이고 있었다.
정상에 다시 다녀오라고 하는데, 오늘은 이만큼으로도 충분히 만족스럽다.
그리고 또 어느 날엔가 이보다 더 환상적인 소백을 만날 기대를 품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