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서북능선

2012. 11. 11. 19:28산행일기

- 산행일시 : 2012년 11월 10일

- 산행코스 : 성삼재-작은고리봉-만복대-정령치-큰고리봉-세걸산-세동치-부운치-팔랑치-바래봉-덕두산-구인월

- 산행동무 : 혼자

 

그 복잡스러운 와중에도 일년중 산이 가장 아릅다워지는 계절을 즐기기 위해 한동안 이리 뛰고 저리 뛰어 다녔더니 이젠 그 것도 시들해진다.

올해 마지막 남은 단풍을 보러 백암산에 가자는 제안도 마다하고, 혼자서 조용히 오랫동안 걸음에 집중할 수 있는 산길을 찾다 레이더에 걸린 것이 지리산 서북능선이었다.

작년에도 같은 날짜에 청광종주를 혼자 했는데... 그러고 보면 연중 바이오리듬이 있는가 보다.

 

지리산 주능선 종주를 한두차례 했을 때만 해도 그걸로 지리산은 졸업이라고 생각했었는데, 별의 별 능선에 골짜기들을 하나씩 알게 되면서 평생 지리산만 다녀도 다 못보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국립공원에서 지정한 법정등로부터 시간날 때마다 하나씩 걸어 보자고 생각했고, 작년부터 생각하고 있었던 서북능선길을 이번에 걷게 된다.

 

연하천, 벽소령, 세석 등, 세련되고 이쁜 주능선 상의 포인트 이름들과 비교하여 왠지 촌스럽고 격이 떨어져 보이는 서북능선의 이름들...

겨울에 눈이 쌓이면 참 멋진 곳이라고 하는데, 반면 다니는 사람들이 많지 않아서 종주하기엔 무리가 있을 것 같아 지금 계절이 나한테는 적기일 것 같았다.

 

수원발 밤기차를 타고 구례구역에 내려 성삼재행 버스에 오른다.

매번 택시로 이동했었는데... 처음 타 본 버스에 후회가 많이 되었다.

출발해야 한다고 빨리 승차하라고 독촉하더니, 구례터미널에 가서는 2~30분 있다가 출발한다고... 이리저리 거쳐서 성삼재까지 가는데, 여기서 한시간 정도를 까먹는다.

게다가 성삼재 올라가는 길에 멀미가 나서 속이 뒤집히고... 앞으론 무조건 몇천원 더 주고 택시를 타야겠다.

 

성삼재까지 버스에 만차로 올라온 사람들이 내려서 향하는 길은 모두 노고단 방향, 나혼자 컴컴한 반대 방향으로 걸어 간다.

모여인과의 거래를 통해 영화표 한장 끊어 주고 알아낸 서북능선 들머리 위치, 그것도 대충 주차장 반대편이라는 정도만 알려주고 자세한 것은 솔맨님이 잘 아신다고 한다.

그 앞에 서서 보니 더더욱 사기 당한 느낌..

 

 

 

 

작은 고리봉. 말 그대로 한치 앞도 잘 보이지 않는 안개 속이다.

게다가 왠 바람이 이렇게 불어 대는지...

으스스한 숲길을 혼자 걷다가 보니 많이 무섭다. 한번은 바람에 날려 눈앞으로 뛰어 들어온 나뭇가지를 보고 화들짝 놀라 고함까지 지르고...

 

 

 

 

만복대에 올라 천왕봉쪽에서 올라오는 일출을 맞이할 요량으로 부지런히 걸어 일출시작 전 넉넉히 도착한다.

 

 

 

 

 

 

 

 

바람이 강하면 운무가 없다고 하던데... 몸이 휘청거리는 바람 속에 주위는 온통 뿌옇기만 하다.

기다리면 걷히리라. 바람을 피해 의자 펴고 주저 앉아 한시간을 기다린다.

날이 밝으면서 강한 바람을 타고 흘러가는 안개의 흐름 사이로 간간히 반야봉이 초단위로 보였다 안보였다를 반복한다.

 

 

 

 

가야할 길이 멀어서 그만 포기하고 일어서 배낭을 메고 출발하려는 순간, 반야 쪽의 하늘이 환하게 열린다.

 

 

 

 

노고단 쪽도... 하지만 천왕봉 쪽은 아직.

 

 

 

 

만복대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정령치를 향해 가는 길. 안개 속에서 나무귀신이 튀어 나올 것만 같은 분위기.

 

 

 

 

만복대는 다시 안개 속으로...

 

 

 

 

 

 

 

 

정령치 휴게소. 아직은 영업 전이다.

 

 

 

 

이제야 천왕봉이 보이기 시작하는데... 여전히 뿌연 안개에 가려서 희미하게만 보인다.

 

 

 

 

세찬 바람을 맞으며 밖에서 아침을 먹기가 뭐해서 문열기 기다렸다 들어 왔는데, 먹고 싶었던 따뜻한 오뎅이 다 떨어졌다네.

커피는 나도 있고... 자리만 좀 빌립시다~ 했더니 흔쾌히 그러라고 한다. 땡큐~~

햄버거와 커피로 아침식사를 기분 좋게 마친다.

 

 

 

 

동쪽 천왕봉 방향과 달리, 북쪽 주촌 방향의 하늘은 맑고 푸르다.

 

 

 

 

 

 

 

 

뒤돌아 본 남쪽과 좌측의 동쪽 하늘은 여전히 안개 속에...

 

 

 

 

 

 

 

 

큰고리봉. 백두대간길은 여기에서 좌측 고기삼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고 한다.

대간길 걷는 사람들도 여기서 하산하는데 나도 걷다가 힘들면 솔맨님 따라 여기서 하산할란다고 했더니, 솔맨님 왈, 그러면 남은 백두대간길 다 걸어야 한다고...

그래서, 좌측 하산길을 쳐다도 안보고 바로 앞으로 내달린다.

 

 

 

 

오늘 하루 나를 엄청나게 힘들게 만들었던 문제의 이정표. 세걸산 1.2km.

산에 다니면서 나름대로 남은 거리와 시간을 계산하며 걷는데, 오늘은 서울행 막차 시간이 있어서 평소보다 신경을 많이 쓰게 된다.

보통 능선길에서 1.2km면 3~40분 거리인데, 이 이정표에서 30분 정도를 걸어도 이거다 싶은게 안보인다.

능선이 확실히 보이는 이런 길에서 알바할 일도 없지만, 혹시나 싶어 핸드폰 GPS도 켜보고... 마침 마주오는 한 팀이 있어 물어 보니 한시간에서 한시간반 정도 더 가야 한다고... 뭐 이딴 빌어 먹을 1.2km가 다 있담.

 

 

 

 

풍경소리님이 봄에 쉬면서 셀카놀이 한 쉼터.

사실 나도 쉬고 싶었는데, 가도 가도 나오지 않는 세걸산 때문에 조급하기도 하고 약도 올라, 그리고 예상치 못한 시간이 너무 지체되어 그냥 지나친다.

 

 

 

 

요 앞의 봉우리인가? 조 뒤의 봉우리인가?

지금 보니 쩌~기 뒤에 있는 봉우리구만...

 

 

 

 

 

 

 

 

정상에 뭔 말뚝 같은 것이 하나 박혀 있는걸 보니 여긴가 보다.

 

 

 

 

바람~~ 바람~~ 바람~~

 

 

 

 

결국 1시간 20분만에 도착한 1.2km. 여기서 진이 절반은 빠진 듯 하다.

집에 와서 지도 펼쳐 놓고 직접 재 보고 계산해 보니 실제 2~2.5km정도로 추정된다.

 

 

 

 

걸어온 길, 만복대 방향.

 

 

 

 

가야할 길, 바래봉 방향.

 

 

 

 

소진된 기력을 보충해야 하는데, 아직도 천왕쪽에서 세차게 불어 대는 바람을 피해 뱀이 나올 것 같은 으슥한 곳에 자리를 잡는다.

 

 

 

 

달걀 하나 풀고, 물 붓고, 풍경소리님과 전화로 수다 좀 떨다가....

 

 

 

 

뱀사골 옆 부운마을.

 

 

 

 

부운치를 지나면서 조망이 시원해지고, 이제까지 걸어 온 길과는 다른 분위기의 산세가 드러난다.

내가 좋아 하는 분위기~~~

점심 먹고 여기까지는 제법 빠른 속도로 걸었는데, 또 다시 걸음이 느려지고 사진 장수가 늘어 나기 시작한다.

 

 

 

 

바래봉 아래 운봉읍.

 

 

 

 

 

 

 

 

지금 계절에 봐도 이쁜데... 철쭉 필 때는 얼마나 이쁠꼬~~

 

 

 

 

 

 

 

 

 

 

 

 

 

 

 

 

 

 

 

 

성삼재에서부터 지겹도록 오른쪽 볼따구를 때려 대던 그 바람이 아직도 계속된다.

이렇게 조망이 확 트인 곳에선 그 정도가 더 심해져서 정신을 못차릴 정도... 겨울에 이런 날씨 만나지 않은 것이 다행이다.

 

 

 

 

 

 

 

 

 

 

 

 

배낭 내려 놓으니 바람에 날아 갈 것 같다. 얼른 다시 메고 서둘러 하산 시작.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뒤돌아 보고....

 

 

 

 

원래 계획했던 시간 보다는 늦었지만, 남은 거리를 보니 하산해 목욕탕 들렸다가 막차 탈 시간은 되겠다.

 

 

 

 

근데, 조금 더 걷다 보니 거리가 왕창 늘어 났다.

하지만, 겉모습에서 왠지 더 신뢰감이 있어 보이는 위의 이정표....

결국, 사람이고 이정표고 겉모습으로만 판단하면 안된다는 교훈을 하나 얻었다. 둘 다 겪어봐야 아는 법~~

 

 

 

 

 

 

 

 

여기에 와서야 아래쪽 허술해 보이는 이정표가 맞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산행종료. 영월정.

 

 

비록 궂은 날씨에 약간의 고생도 하고, 어이없는 이정표의 거리표시 때문에 마음이 조급해져서 약이 오르기도 했지만, 오랫만에 걸어 보는 산길 같은 산길의 느낌이 참 좋았다.

주능선을 계속 바라보며 걷는 그 조망도 괜찮았고, 만복대의 일출과 바래봉의 봄풍경은 꼭 다시 와서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했던 산행이었다.

 

느긋하게 목욕할 시간은 안되어도 따끈한 순대국 한그릇 먹을 시간은 충분하다. 나름 세면도 하고, 양치도 하고, 옷과 양말도 갈아 신고....

밥 다운 밥을 오늘 처음 먹으니 완전 꿀맛, 뱃속은 뜨끈하고, 산행 내내 지난 일년치 바람을 다 맞은 얼굴이 후끈 달아 오르면서 소주 반병을 마신 느낌이 든다.

버스에 올라타서 걱정해 주신 풍경소리님께 산행종료 보고하고, 해피투게더를 핸드폰에 플레이시켜 놓고 나서 그냥 정신을 잃었다.

얼마후 일어나 보니 핸드폰은 버스바닥에서 구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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