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10. 20. 13:56ㆍ산행일기
- 산행일자 : 2010년 10월 17일 (무박산행)
- 산행코스 : 설악산 (소공원-비선대-마등령-공룡능선-희운각대피소-천불동계곡-비선대-소공원 원점회귀)
- 산행동무 : 펭귄
올 6월, 블님들과 함께 했던 설악공룡산행에서 심하게 망가진 이후 설욕을 다짐해 오다가 4개월만에 복수전에 나선다.
복수의 날짜가 잡힌 이후로는 긴장의 끈을 놓지않고, 첫 아기를 가진 임산부의 자세로 좋은 것만 먹고, 좋은 생각만 하면서 몸관리에 들어 간다.
너무 긴장을 한 탓인가? D-day 전날, 그러니까 설악으로 출발하는 날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기지개를 펴다가 오른쪽 종아리에 심하게 쥐가 나서 여간 아픈게 아니다. 출발하는 시각까지 수시로 마사지를 해주었지만 여전히 통증이 있다.
펭귄님과 사당역에서 만나기 위해 주차장으로 내려가 차에 시동을 거는데, 차가 킬~킬~킬~하면서 시동이 안걸린다. 주중엔 차를 전혀 안쓰니까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순간, 지난 6월에 공룡에서 방전되었던 내 다리가 떠오른다. 기분이 안좋다.
보험회사에 긴급출동을 요청하고, 펭귄님께는 "배터리가 방전되서 긴급출동 기다리는 중"이라고 문자를 보냈더니, 운전을 안하시는 펭귄님.... "배터리 방전"=>"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되어 전화가 안됨", "긴급출동"=>"회사에 급한 일이 생겨 나가봐야 함" 이렇게 이해를 하시고는 산행약속이 펑크나는 걸로 아셨단다....ㅋㅋㅋㅋ
다행히 긴급출동이 빨리 와서 아예 새걸로 배터리를 교체하고, 사당역을 향해 냅다 쏘다가 산행중 먹을 김밥과 어묵을 사며 항상 운전하기 전에 사먹던 프렌치카페도 하나 사서 빨대를 꼽고 쪽 빠는데 헛빨린다.
빨대가 갈라져서 바람이 샌다. 또 다시 지난 6월 공룡에서 구멍난 풍선에 헛바람만 불어 넣듯이 쌕쌕거리기만 하던 내 숨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계속되는 공룡의 원격방해공작을 모두 극복하고, 소공원주차장에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한다.
우리나라에서 가장 부지런한 직장인들 중 하나인 국립공원공단 직원들...이 새벽시간에 주차비와 입장료를 징수한다.
여기에서 공룡의 마지막 원격방해공작으로 배낭의 주머니지퍼고리가 툭 끊어져 버린다.
오늘 조짐이 좋지 않으니 조심스럽게 완주만 하기로 마음을 다 잡으며 출발한다.
천천히 한걸음씩 걷다 보니 어느덧 마등령이다.
원래 계획은 이곳에서 기다렸다 일출을 보는 것이었는데, 시야가 좋지 않은데다 날씨도 추워서 그냥 진행을 하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빨간해가 너무나 선명하게 떠 있는 것이 아닌가? 매일 보는 해... 다음에 보자~
펭귄님은 카메라가 촛점이 안맞는단다.
우울하고 심란한 표정으로 카메라를 어루만지시는 모습에.... 취재본능이 발동되어 재빨리 한 컷 찍는다.
가을이 너무나 갑자기 다가왔다.
공룡에서 불어대는 바람은 걸음을 걸을 때도 티한장으로 버티기에 추울 정도...쟈켓을 꺼내서 입고 간다.
어디선가 공룡의 단풍이 아름답다고 들은 듯한데...올해는 영 아닌 듯하다.
대부분 말라 비틀어져서 제대로 물이 들기도 전에 다 시들어 버린 것 같다.
가까이선 본 단풍도, 멀리서 내려다 본 단풍도 색깔이 곱지 못하다.
게다가 오늘 공룡능선 주변은 안개가 지긋이 깔려 있어 시야도 좋지 못하다.
신선대에 도착하니 한시름이 놓이면서, 그토록 사나워 보이던 공룡도 순한 양처럼 보이고 친근감이 느껴진다.
이제부터는 친하게 지내자고... 내년 봄에는 한계령에서 출발하는 코스로 와서 다시 보기로 약속하며 무너미로 내려간다.
친구된 기념으로...ㅋㅋ
희운각에서 라면을 끓여 먹고, 커피도 한잔씩 마시고 천불동계곡으로 향한다.
천불동 쪽은 물이 흐르니 단풍도 훨씬 좋지 않겠나 하는 기대감을 가지고....
공룡머리를 닮은 나뭇잎이라고 찍었는데... 지금 다시 보니 돼지머리에 더 가깝게 보인다.
천불동계곡으로 내려 갈수록 단풍의 색깔이 점점 고와지면서 아름다운 풍경이 연출된다.
펭귄님은 카메라가 작동안되니 발걸음이 무지하게 빨라진다. 덩치 큰 산여인님인줄 알았다.
슬그머니 옆으로 빠져 밍기적거리면서 펭귄님을 먼저 보내드리고, 나는 천불동계곡의 아름다움에 푹 빠져서 감상도 하고, 작품활동도 하면서 세월아~ 네월아~ 걷기 시작한다.
한참을 이렇게 놀면서 걷다가...앗뿔사!! 시간이 너무 지체되었다.
기다리고 계실 펭귄님이 이제야 생각이 나면서 부리나케 뛰다시피 하산을 서두른다.
일찍 내려와서 계곡물에 탁족까지 마친 펭귄님을 만나 엄청나게 막힐 귀경길을 걱정하며 서울로 향한다.
졸리면 휴게소에 들려 커피 한 잔 마시고 일몰사진도 찍다가.. 또 졸리면 창문 열어 찬바람을 맞으면서 운전하고... 5시간만에 사당역에 도착하여 펭귄님을 내려 드리고 귀가한다.
공룡은 사시사철 공룡이었고, 설악은 언제나 설악이었다.
누가 오던 마다하지 않고, 누구에게나 제 등짝을 심지어 속살까지 내어주었는데, 사람들이 상처내고 더럽히고, 누군가는 복수를 하니 어쩌니 하고 다닌다.
걔는 그냥 한자리에 가만히 있기만 했는데........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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