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광종주 산행기

2011. 11. 13. 12:19산행일기

- 산행일시 : 2011년 11월 12일

- 산행코스 : 옛골입구-정토사-매봉-혈읍재-석기봉-이수봉-국사봉-하오고개-발화산(우담산)-바라산-백운산-광교산(시루봉)-종루봉(비로봉)-형제봉-반딧불이화장실

- 산행거리 : 약 25 Km

- 산행시간 : 9시간 30분

- 산행동무 : 혼자

 

지난 여름 화대종주 이후로 다시는 지리종주를 안할 것 같았는데, 올 여름부터 자꾸만 지리종주가 땡기기 시작한다.

아껴 두었던 휴가를 제주여행에 다 털어 먹고, 토요일 대피소 예약을 호시탐탐 노려 봤지만 역시 하늘의 별따기...

그래서 대안으로 생각해 본 것이 청광종주다. 어디선가 본 기억에 지리산 종주길의 축소판이고, 몇시간 안에 청광종주를 끊으면 지리산 당일종주가 가능하다는 글이 있었다.

 

이번 주에는 블벗님들과 희양산행이 계획되어 있어서 다음주쯤에 시도해 볼 요량이었는데, 여러가지 사정상 희양산행이 무산되고 혼자 조용히 청광종주길에 나선다.

"혼자 조용히"에는 나름대로의 의미가 있었던 것이... 한번도 20 Km 이상을 걸어 본 적이 없었고, 15 Km이상을 걸으면 슬슬 다리가 풀려 왔던 경험에 비추어 스스로도 완주할 자신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중도에 포기를 하더라도 주변 분들한테는 원래 계획이 거기까지였다라고 구라를 칠 생각이었다.

 

양재동 트럭터미널에서 시작하는 오리지날 코스, 27km.. 도무지 감도 잡히지 않는 거리를 걷는 동안 혹시나 굶어 죽는 일이 생기지 않을까 하는 걱정에, 지금 생각해 보면, 한 이틀은 버텨도 될 만큼의 식량을 바리바리 싸들고 새벽 6시 화물터미널에 도착한다.

예전에 주차하고 산행을 시작했던 들머리를 생각하고 왔는데.... 온통 공사판에 길도 없어지고, 산이 뭉텅 깍여 나간 들머리였다고 추정되는 자리엔 못보던 터널까지 생겼다. 날도 밝지 않은 시간에 간간히 화물차들만 다니는 진흙길을 헤메다가 헛바퀴 몇번 돌리고, 옥녀봉은 포기하고 매봉부터 시작하기로 계획을 수정하여 옛골입구로 방향을 바꾼다.

사실 이때만 해도, 어차피 완주도 못할거 옥녀봉 하나쯤이야... 하는 생각에 별 아쉬움이 없었는데....

 

옥녀봉 구간, 약 1.8 Km 정도를 빼먹고, 옛골입구 정토사에서 매봉으로 출발한다.

 

 

 

 

 

 

 

 

 

안개가 잔뜩 낀 날씨 탓에 카메라 꺼낼 일도 없고, 기온도 걸음하기에는 딱 좋을 정도로 살짝 추운 정도.

매봉에서 아침식사로 과일과 김밥으로 요기를 하며 잠시 쉬어 간다. 

 

 

 

석기봉. 

 

 

 

 

 

 

 

 

 

 

 

 

2년전, 피터팬님과 산여인님이 다녀 갔을 때는 없었던 하오고개의 육교.

덕분에 위험을 무릅쓰고 무단횡단할 필요가 없어졌고, 길 찾느라 알바하는 수고도 없다.

 

 

 

원래의 계획상, 이곳에 도착예정시각을 11시로 봤는데...생각보다 일찍 도착했다.

다리 컨디션도 괜찮고, 시간도 여유가 있다고 생각하니 살짝 완주에 대한 욕심이 생기기 시작하는 시점이다. 

 

 

 

대포카메라 구입한 이후로 한동안 관심을 두지 않았던 똑딱이카메라가 심술을 부리기 시작한다.

어제 집에서부터 왔다갔다 하던게 여기서 완전히 맛이 가서 메모리카드를 인식하지 못한다. 여지껏 찍은 사진들을 건질 수 있을라나 하는 걱정... 지금부터는 아예 배낭 속에 집어 넣고 핸드폰을 앞에 장착하고 찍는다.

고마웠던 하오고개 육교를 다시 한 번 내려다 보고 우담산을 향해 오르기 시작한다. 

 

 

 

 

 

 

발화산 정상, 우담산이라고도 하는 모양이다.

 

 

 

앞에 보이는 바라산, 오늘 가장 힘들었던 구간 중에 하나였다.

또 다른 하나는 백운산 오름길. 

 

 

 

바라산 오름길에 최근에 설치된 걸로 보이는 계단길. 

 

 

 

백운호수를 보면서 저기로 내려가면 우리집까지 가기 좋을텐데...라는 생각을 살짝 해 본다. 

 

 

 

간식 좀 먹고, 쉬어가려고 짐을 풀던 찰나에 한무더기의 떼거리들이 올라 오더니 무슨 에베레스트라도 정복한 양 소리를 지르고 막걸리파티를 벌이기 시작한다.

짜증이 확~~~ 다시 짐보따리 싸서 자리를 뜬다.

 

 

 

백운산 오름길 적당한 자리에서 아까 못먹었던 간식으로 에너지를 보충하고 디저트로 커피도 한잔, 양말을 갈아 신으니 발이 확실히 편해진다.

양말 하나의 효과가 이렇게 좋은 걸.... 

 

 

 

백운산 약 1km정도 남은 지점, 누가 묻지도 않았는데 내려오던 한 분이 얼마 안남았다... 요 위만 올라가면 백운산이다 하고 지나간다.

내심 짐작하고 있는 거리가 있는데, 그 말을 듣고 나서 갑자기.. 요 위에 올라서도 보이지 않는 백운산 때문에 조바심이 나고 멀게 느껴졌던 백운산 정상이었다.

애시당초 내가 포기하고 하산할 것이라고 예상했던 한계지점이기도 했다.

하지만, 처음 출발할 때보다 오름길이 힘들다 느껴지기는 했지만, 아직도 다리힘은 여유가 있다.

요즘 내가 뭘 먹었는지 곰곰히 생각을 해 보며 슬며시 입가에 미소가 올라 온다.

 

 

 

뱃속에 거지가 들어 앉았는지... 노루목대피소에서 햄버거 하나 뚝딱하고, 커피 또 한잔.

이제부터는 마음이 편해지고, 느긋해진다.

 

 

 

토월약수터 쪽으로 하산하면 레테님이 맛있는 저녁을 사주시겠다고 했는데, 그 마음만 감사히 받고 남은 종루봉과 형제봉을 찍으러 경기대로 향한다.  

 

 

 

종루봉(비로봉) 정상의 정자. 

 

 

 

형제봉에 정상석이 원래 있었던가? 전엔 못 본 것 같은데...왜 기억이 없지?

 

 

 

 

 

 

형제봉 이후로는 아주 편안한 산책길. 기분은 한껏 업되고, 발걸음도 가볍다.

거지가 들어 앉은 뱃속에서 또 신호를 보내니 후미진 구석자리로 들어가 또 먹는다.

경기대 건물이 보이기 시작하니 다 내려 왔네~~ 

 

 

 

얼굴에 덕지덕지 묻은 소금기를 씻어 내야 하는데... 반딧불이화장실이 공사중이다. 

 

 

 

대포카메라와 달리, 핸드폰 사진은 확실히 여학생들이 잘 찍는다.

조작법을 설명해 주려고 하면, "저도 알아요~~"  이런다.    

 

 

 

한껏 업된 기분에 여기저기 전화해서 자랑도 하고 업드려 절도 받고, 스마트폰으로 집까지 가는 대중교통경로를 조회해 보니 친절하게 안내를 해 준다. 중간에 버스 갈아타는 구간에 한 800미터 정도 또 걷게 만들어서 그렇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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