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5. 19. 15:14ㆍ산행일기
- 산행일자 : 2015년 5월 10일
- 산행코스 : 불기고개-화채봉-서리산-절고개-축령산-수래넘어고개-외방리(석고개)
- 산행동무 : 혼자
작년 여름, 이곳 불기고개에서 철조망 사이 입구를 통해 주금산에 오르기 전 반대쪽 산길이 나를 잡아 당기는 느낌을 받아 언제고 꼭 한번 가보리라고 마음을 먹고 있었는데, 마침 서리산에서 철쭉이 필 즈음이라 겸사겸사 그 길을 걸어 보기로 한다.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차도 안밀리니 집에서 불기고개까지 오는데도 한시간 남짓 밖에 안걸린다.
일차선으로 차선이 좁아진 이후부터 내 앞에서 답답하게 달리던 차량 3~4대는 모두 다 축령산 휴양림으로 쏙쏙 들어가는 것을 보고는 휴양림 구간의 산길이 오늘 몹시나 복잡하겠구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작년 주금산행 때는 가을꽃밭이었던 서리산 방향 등로입구에 지금은 철쭉 나무 두어그루가 장식되어 있었다.
자그마한 봉우리를 하나 넘고 화채봉으로 향하는 길, 생각보다 경사가 가파르지만 인적이 없고 조용한 산길을 즐겨 본다.
이쯤에서 아침식사로 준비해온 삼각김밥과 커피를 먹고 있는데, 아저씨 한명과 아주머니 두명의 팀이 올라 오시더니 "많이 캐셨어요?" 하고 묻는다.
어리둥절 해서 "네? 뭘요?" 하고 되물으니 뒤따라 오시던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타박하며 "딱 보면 모르겠나? 우리처럼 나물 캐러 다니지 않게 생겼자나. 산행하시는 분이다~" 그러신다.
복장과 차림새가 달라서 그런 말을 하셨구나 하고 이해는 했지만, 그 순간 그분들 대화가 웃겨서 커피 마시다 뿜을 뻔 했다.
젠장~~ 어찌 타겟만 빼고 앞뒤좌우로 촛점이 이리 다 잘 맞았을까?
정상석은 물론 정상표시도 없이 글자가 다 지워진 이정목 하나 덜렁 놓여진 화채봉을 허무하게 지나고...
급경사 오르막을 씩씩대며 오르는데 김일성 사진이 있는 삐라를 발견했다. 예전엔 신고하면 포상금도 주지 않았던가 싶은데, 없어진지 오래 되었지?
괜히 삐라 사진 찍어서 올렸다가 요즘 몇년사이에는 또 다시 그런 일로 잡혀갈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고...
그러다 보니 머리위에서 왁자지껄 시끄러운 소리가 들리고, 어느새 연분홍빛 서리산 능선에 올라 섰다.
사람 진짜로 많데이~~~
복잡한 등로를 피해 조망터로 올라서 쉬려니까, 뒤따라 오던 어느 분이 "야~ 봐라, 여기 뭐 있나부다. 일루 와 봐라" 하며 일행을 몽땅 몰고 또 올라와 사진 찍는다고 난리다.
바로 앞 발 밑에 화채봉과 그 뒤로 오늘 출발한 불기고개, 다시 그 뒤로는 주금산 라인.
서리산에서 자랑하는 한반도모양의 철쭉밭인데...
처음 서리산에 올라 이 풍경을 봤을 땐 그래도 약간의 감동이 있었는데, 그 사이 전국을 다니며 너무 좋은 풍경을 많이 봤는가 보다.
그냥 어디 아파트 화단을 본 것 같은 느낌을 가지고 얼른 복잡한 시장통을 벗어 나고만 싶었다.
서리산 정상.
서리산에서 축령산까지 이어지는 능선길이 오늘 걸었던 길 중에 가장 마음에 들었던 길이었다.
가족 단체톡방이 울려서 보니 딸래미가 이상한 사진을 올렸다.
장난끼가 발동해서 연출사진을 찍어서 보냈더니 강아지가 바들바들 떠는 이모티콘이 날아 든다. ㅋㅋ
절고개쯤 오니 또 다시 사람들이 많아지고...
오늘 내가 갈 길은 남이바위 방향으로 약 500미터 정도 따르다가 저 앞에서 좌측으로 꺽어서
요 능선을 따라 오독산, 은두산 방향으로 진행하는 것이다.
이곳부터는 인파와 다시 빠이빠이다~
수목원로가 뭘까 하고 나중에 지도를 들여다 보니 아침고요수목원을 말하는 듯 하다.
사람이 많지 않아서 좋긴 한데... 길이 개떡 같다.
마침 어제부터 비박산행을 마치고 집에 와 쉬면서 나의 산행안부를 묻는 S여인님의 카톡이 날아와서 고행기를 낱낱이 보고하며 천천히 하산을 한다.
내려서기에도 다리에 힘이 빠짝 들어가는 경사길을 올라 오시는 아주머니 세분이 나누는 대화를 들어 본다.
"힘들어 죽겠다~ 노르웨이라도 달고 가면 좋겠다~"
"그게 뭐꼬?"
"거 있자나? 똥그란 바퀴에다 밧줄 감아서 당기면 술술 잘 올라가는거~~"
"아~ 도르레? 니는 도르레도 모르나? 노르웨이가 뭐꼬?"
"뭐.. 힘들어 죽겠는데, 그거나 저거나..."
도저히 뭘 붙잡지 않고는 내려설 수 없을 정도의 급경사에 낙엽과 작은 돌조각에 수차례 미끄덩, 허리 삐끗.
열여덟 소리가 절로 나온다.
액센트를 1에도 주어 보고, 8에도 주어 보니 역시나 1에 주는게 가장 어울리더라고 S여인님께 보고를 하니 본인이 해 보아도 내 의견에 동의 한다고.. 웃기는 아지매~ ㅋㅋ
힘도 들지만, 급경사길 내려서느라 발가락 끝이 등산화에 자꾸 닿아 아파 죽겠다.
전에 신던 캠프라인을 버리고 새로 사면서 두꺼운 깔창을 빼고 기본 깔창만 깔고 신겠다고 한치수 작을 걸 샀더니 이런 길에서는 감당이 안되네~
아무래도 다시 예전 치수로 돌아가야겠는데... 지금 신고 있는 것은 어쩌지?
오독산이건 은두산이건 이제 더 이상 걷고 싶은 생각이 싹 사라졌다.
시간도 체력도 여유가 있지만, 그냥 앞에 보이는 수래넘어고개에서 하산해야겠다고 결심한다.
수래넘어고개에서 마을로 이어지는 잘 닦여진 임도길이 있는데, 지도를 보니 꼬불꼬불하기가 구절양장이다.
반면, 지도상에 표시된 또 다른 길이 곧게 일자로 뻗어 저 아래에서 임도길과 만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얼추 GPS를 켜서 맞춰보니 직선길이 이 길인가 보다 싶어 접어 들었는데, 얼마 안가 길이 끊어지고... 방향만 잡아서 길을 찾아 보겠다고 걸으니 낙엽이 수북히 쌓여 무릎까지 푹푹 빠지는 마른 계곡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계곡위로 올라 오면 온갖 잡풀더미를 헤치고 긇히고 뜯기고...
그 와중에 S여인은 뱀도 밟고 멧돼지도 만나고 하라며 더욱 버라이어티한 산행을 즐기라고 응원을 보내온다.
산행 마치고 신발을 벗어 그 속에 들어간 모래와 돌조각은 털어 보았지만, 낙엽부스러기를 그렇게 많이 털어내 보기는 처음이었다.
드디어 다시 아까 그 임도길을 만났다.
이제 다시는 이길에서 벗어나지 말고 얌전히 마을까지 따라 가야지~ 하며 다짐을 한다.
어렵게 산길을 마치고 마을로 접어 들었다.
그런데, 버스가 다니는 큰길까지는 얼추 지도를 봐도 2~3킬로는 남아 보이는데 에휴~~
택시 지나가는 것은 기대도 안하고 혹시 내려가는 차라도 있으면 얻어 타야겠는데...
L님의 나중 말씀에 의하면, 전날 피터팬님은 인상이 좋으셔서 축령산 휴양림에서 쉽게 차를 얻어 타고 빠져 나오셨다고 하는데, 이곳 마을은 인상이 좋고 나쁨을 떠나 사람도 차도 잘 보이지 않는다.
1킬로를 넘게 걸어 내려가다 보니 차가 한두대씩 보이기 시작하는데, 나를 거쳐 내려가는게 아니라 약속이나 한 듯, 꼭 내 전방 50미터 앞에서 시동을 걸고 출발을 한다.
한참을 더 내려가니 이제는 내 뒤에서 나를 거쳐 내려가는 차들이 나타나는데.... 역시나 안태워준다. 인상에 문제가 있긴 한 모양이다.
계속 터덜터덜 걸어 내려가다가 무슨 작업을 하러 오신 듯한 아저씨 두분이 막 차를 출발하려고 하시길래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태워 달라니 선뜻 타라고 하신다.
게다가 가는 곳까지 태워 주신다고까지 하니 웬 떡인가 싶었는데...
그 분들은 큰길에서 좌회전해서 마석으로 나간다고, 나는 그 반대로 우회전 해야하니 큰길까지만 태워주시겠다는 말을 하던 도중 다 왔다고 내리란다.
한 300미터쯤 타고 왔나보다. 어느새 큰길까지 거의 다 걸어 내려 왔었던 모양이다. ㅋㅋㅋ
이제 버스를 타고 비금리 종점까지 가서 거기서부터 불기고개까지 남은 3킬로 거리를 걸어 올라가던 히치를 하던 차를 회수할 일이 남았다.
다행히 비금리까지 들어가는 330-1번 버스는 금방 도착했다.
나도 참 웃긴게... 버스노선이란게 정해져 있고 비금리가 종점이란 것을 알고 있는데, "혹시 불기고개 위까지는 안올라가죠?" 라고 기사님한테 물어 보니 단호박이 무색할 정도로 단호하게 "네!!!"라는 답변이 돌아 온다.
비금리 종점에서 지치기도 했고, 심적으로도 버스까지 타며 산행이 종료되었다는 분위기가 이미 자리를 잡았는데, 더이상 다시 오르막경사길을 걸어 올라갈 의지가 안생긴다.
길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올라가는 차가 지날 때마다 일어나 태워달라는 손짓을 하길 30분이 넘었나? 내 인상이 그리 안좋은가 하는 회의가 든다.
마석에서 택시를 부르기에는 배보다 배꼽이 훨씬 더 큰 것 같고... 좌절감에 빠져 있을 무렵, 반대쪽 차선 불기고개에서 내려오는 택시 한대를 길을 건너가 정말 몸으로 필사적으로 가로막아 세웠다.
기사님도 기본요금거리를 가던길 돌려서 올라갔다 다시 내려오려면 번거롭다는 표정이었으나, 내 사정하는 모습이 정말 불쌍해 보였는지 약간은 적선하는 느낌으로 "그럼.. 타세요~" 그러신다.
나는 거기다 또 보태기 한다고, 오늘 어디서 어디까지 걷고, 발을 다쳤고, 어쩌고 저쩌고... 택시요금도 오천원짜리 한장 그대로 다 드렸다.
불기고개를 올라가니 방금 전 나를 안태워주고 올라온 차량 한대에서 몇몇 산행객들이 나와 장비정리를 하고 자기네들끼리 차를 나눠타고 있었다.
내가 그 입장이었다면 불편을 무릅쓰고 태워주었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나도 장비정리를 다 하고 내 차에 올라타니 저절로 긴 한숨이 휴~~ 하고 나온다.
'산행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덕유산 (0) | 2015.06.12 |
---|---|
설악산에서의 하룻밤 (0) | 2015.06.02 |
으름꽃 (0) | 2015.05.08 |
대전둘레산길, 식장산~계족산 (0) | 2015.04.17 |
고동-화야산 (0) | 2015.03.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