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의 가을

2014. 10. 1. 00:24산행일기

- 산행일자 : 2014년 9월 28일 ~ 29일 (1박2일)

- 산행코스 : 거림매표소-세석대피소(1박)-촛대봉-연하봉-장터목대피소-천왕봉-로타리대피소-중산리

- 산행동무 : 안영봉, 한기성, 강선수

 

지난번 구절초 산행에 나섰다가 안개속에서 하루종일 헤메다가 급기야 비까지 쫄딱 맞고 왔던 지리산을 딱 한달만에 천왕봉 가이드 신분으로 다시 찾는다.

구례 출신이지만 지리산에 가본 것이라고는 차타고 오른 성삼재가 다라는 안선배와 수차례 지리에 들면서 천왕봉을 노려봤지만 이런 저런 이유로 장터목 이후로는 밟아 본 적이 없다는 한선수, 둘이 친분은 전혀 없지만 각각 나한테 천왕봉 한번 안내해 달라는 말이 있어서 패키지로 묶어 단풍이 들 무렵에 한번 가기로 약속을 해놓았다.

심심하면 남의 바이어 접대하는 자리에도 나타나고, 지방출장 가는 길에도 괜히 따라 나서길 좋아하는 강선수는 마침 이날에도 심심할 예정이라고 함께 가겠다며 막차에 올라탄다.

 

지난번 구절초 산행 때 너무 큰 기대를 하면서 설레발을 쳤다가 낭패를 본 기억이 자꾸만 되살아 난다.

덕분에 내 마음에도 겸손이 찾아 들어, 정말 이번에는 다른 것 하나도 바라지 말고 딱 하나, 안개속에 갇히는 일만 없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는데, 출발을 이틀 앞두고 둘째날 비소식이 기상청 예보사이트에 뜬다.

마음을 비우자고 하지만, 불안감은 증폭되고, 이번에는 뭐라도 보고 와야하는데.. 라는 생각이 자꾸 들다가 불현듯 떠오른 것이 청학연못이었다.

안그래도 내가 다녀오고 며칠 지나지 않은 개천절 즈음에 다른 블친님들이 청연을 간다고 하는데, 마침 이번 시간이 널널한 1박2일 길에 나도 혼자서 한번 찾아 보리라 결심을 하고 청연 찾기를 위한 벼락치기 공부를 시작했다.

 

서로 친분은 없지만, 나를 통해서 상대방에 대한 이야기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게다가 산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세명이 친해지는데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내가 어디 지방에 원정산행을 간다고만 하면 그 동네 어디에 지인이 유명한 음식점을 하고 있으니 들려서 식사를 하고 오라며, 전국 오만군데 모르는 사람이 없는 마당발  안선배가 고향땅 나와바리에 들면서 그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 준다.

거림에서 약초농사를 짓는다는 안선배의 지인께서 산행날머리인 중산리로 픽업트럭을 가지고 픽업을 나와 주신 것도 모자라 살고 계신 예쁜집 구경도 시켜주시고 그 앞 식당에서 근사한 오리불고기로 영양보충까지 시켜 주셨다.

 

 

 

식당앞에서..

 

 

 

 

이건 산행 마치고 뒷풀이로 먹어야 하는 음식인데... 술 좋아하는 강선수는 산행할 생각은 뒷전이고 술한병 더 마시자고 떼를 쓰고...

 

 

 

 

어찌어찌 식사자리를 마무리하고 거림에서 한시간 정도 고도를 올리니 벌써 단풍이 곳곳에 보인다.

 

 

 

상남자 셋이랑 산행하니 쉬는 타임에도 그냥 쉬기만 할 뿐, 별 재미는 없다.

 

 

 

 

 

 

 

 

세석교 앞에서 돌아가며 인증샷 한장씩 박고... 강선수 배가 홀쭉하다~~

배가 들어간 만큼 어깨가 올라 온 것 같아 보이고...ㅋㅋ

 

 

 

 

세석대피소 전방 500미터 청학동 갈림길에서 나혼자 청연에 다녀오기로 한다.

원래 다같이 가기로 했는데, 거창한 점심식사 덕에 출발이 늦어져서 이곳의 도착시간이 예상보다 지연된 탓도 있고, 비법정이란 부담감도 있어 세명 모두 딱히 내켜하지 않길래... 나또한 초행길에 모두 끌고 가서 고생시키고 싶지 않은 마음도 있었다.

 

숲속에 배낭을 숨겨놓고 카메라, 스틱 그리고 GPS 발동시킨 핸드폰을 손에 들고 그야말로 탐험에 나서는데 묘한 짜릿함이 느껴진다.

확연한 길을 따라 가다 보면 여러갈래로 갈라지고, 그중 하나 대충 찍어서 가다 보면 GPS에 미리 입력해 놓은 경로에서 이탈해 있는 것을 발견하고 쌩길을 헤치며 궤도 수정하기를 수차례 반복한 끝에 느닷없이 눈앞에 나타난 청학연못.

그 순간의 감동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누군가가 옆에 있었서 함께 기뻐해주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랄까?

 

 

 

 

 

 

 

 

 

 

 

 

 

 

 

 

 

 

 

그렇게 청연탐사를 무사히 마치고, 세석대피소에 올라가니 다들 나 오기만 목빠지게 기다리고 있었다.

내 배낭안에 모든 취사도구들이 다 들어 있으니 음식재료만 보면서 침을 꼴깍꼴깍 삼키고 있는 수 밖에...

유들유들한 언변의 안선배는 옆집 식구를 꼬셔서 기가 막힌 밥을 지어 내고, 그 사이에 구워낸 삼겹살과 쏘시지는 후라이팬에서 덜어내기가 무섭게 사라진다.

삼겹살 불판이 세번 돌아갈 때까지 나는 한두점 밖에 못 먹었다는...

한쪽에선 더덕주가 돌아가고, 나는 쏘맥으로, 또 누구는 쏘주만... 각자 취향에 따라 술이 들어간다~ 술술~~

마지막으로 부대찌개에 밥 말아 먹는 것으로 이날의 만찬을 마무리하고 잠자리를 찾아 간다.

 

역시 노는데는 평일이 좋다.

일요일 저녁의 대피소는 한산하니 혼자 두자리를 써도 될만큼 여유롭다.

여기저기서 코고는 소리가 돌아가며 들리고, 옆자리의 강선수는 비싼 에어매트를 샀다고 가지고 와서는 계속 부스럭거리는 소리를 낸다.

내꺼 발포매트는 아무소리도 안나는데....

난데없이 어디선가 잠꼬대를 하는지, 자다 쥐가 났는지.. 으악~~하는 비명소리도 들린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나도 잠이 들어 그 이후로는 아주 잘 잤다~~ 나 잠든 이후로 다른 사람들은 어땠는지 모르겠지만....

 

이튿날 새벽 일출을 보기 위해 촛대봉에 오른다.

이미 하늘은 잿빛이고 간간히 빗방울도 날리는 것이 오늘 해를 보는건 진작에 물건너 간것 같다.

천왕봉 방향은 구름이 걸려 있어 불안감을 가중시킨다.

 

 

 

 

 

 

 

 

어디선가 구름이 자꾸만 몰려와 우리가 가야할 길을 완전히 덮어 버리기도 하고...

 

 

 

 

내내 구름에 갇혀 있던 세석평전이 잠시 보이는 순간 이곳에 처음 온 안선배와 한선수의 인증샷을 찍어 주고...

 

 

 

 

더 이상의 조망을 포기한채 다들 장터목으로 출발을 시키고, 나도 5분간 휴식 뒤에 배낭을 들어 올리는데....

세찬 바람이 불어 오면서 구름이 시속 백킬로로 골사이 능선을 굽이쳐 넘어 간다.

한쪽편 하늘에선 일출의 불그레한 기운이 펼쳐지기 시작하며 뭔지 모르게 주변 분위기가 급변하기 시작한다.

들어 올리던 배낭 내려 놓고 다시 촛대봉으로 뛰어 올라간다.

 

 

 

아래쪽 안개구름은 많이 걷혔지만 두툼한 위쪽 하늘의 구름은 건재함을 과시하며 틈새로 간간히 붉은 빛을 내보일 뿐이다.

 

 

 

 

지난번에 정말 혹독하게 당했는 모양이다.

앞에 능선과 봉우리가 보인다는 것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세석에서 장터목 가는 길.

막 들기 시작한 단풍이 초록과 어울어져서 더 도드라지고 풍성한 느낌이 든다.

 

 

 

 

가끔은 이렇게 몽환적인 풍경도 보여주고...

 

 

 

 

 

 

 

 

 

 

 

 

 

 

 

 

 

 

 

 

 

 

 

 

 

 

 

 

다들 장터목으로 진작에 직행하고, 그래도 눈썰미 좋고 모델 놀이를 즐기는 한선수는 연하선경을 앞에 두고 혼자 찍사를 기다리고 있다.

과연 연하선경은 오늘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복권 긁는 마음으로 이곳을 올라 선다.

 

 

 

 

하늘이 파랗지 않다고 불평할만한 여유도 없이 이 순간을 만끽한다.

그냥 여기서 자리펴고 한시간 정도 앉아 쉬어 가면 좋으련만...

 

 

 

 

 

 

 

 

펼쳐진 주능선 뒤로 반야님도 얼핏 보였었는데...

 

 

 

 

 

 

 

 

안선배한테 세석~장터목 구간은 종주길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이니 기대하라며 짠~하고 보여주려고 했는데, 인증사진 하나 안남기고 쌩~하니 지나갔는 모양이다.

강선수는 아까부터 뭐 마렵다더니 또 바쁘게 지나갔겠다 싶고...

 

 

 

 

 

 

 

 

 

 

 

 

 

 

 

 

 

 

 

 

 

 

 

 

 

 

 

내년 이맘때에는 깔끔한 장터목대피소의 모습을 볼 수 있겠다.

따뜻한 실내에서 서서 먹자는 안선배와 강선수, 바람이 좀 불긴 하지만 그래도 밖에서 자연을 맞이하면서 앉아서 먹자는 나와 한선수가 팽팽하게 맞선다.

차에서는 운전대 잡은 넘 마음이지만, 여기선 버너와 코펠 가진 사람 마음대로~~ 그냥 밖에다 장비 펼치고 앉아 버린다. ㅋㅋ

그렇게 아침식사로 스팸라면과 어제 남은 밥을 말아서 배불리 먹고....

 

 

 

 

 

 

 

 

남들은 티한장 걸치고 오르는데, 혼자 우모복까지 껴입고...

 

 

 

 

모든 취사도구가 다 들어 있는 내 배낭은 어제와 크게 다를 바가 없는데, 먹거리가 다 뱃속으로 들어가 다들 배낭이 가벼운지... 믿었던 강선수 마저도 사뿐사뿐 잘 오른다.

그러거나 말거나.. 한걸음 옮기기가 힘이 들지만, 그래도 내 할 일 꿋꿋이 다 해가며 느긋하게 오른다.

 

 

 

 

 

 

 

 

 

 

 

 

 

 

 

 

 

 

 

 

 

 

 

내내 일등으로 내달리신 안선배는 벌써 통천문 위에 올라서서 쉬고 계신 모양이다.

 

 

 

 

지난 주말의 이 모습을 미리 봤는데, 그때가 더 아름다웠다.

이미 군데군데 단풍이 떨어진 빈 가지들이 희끗희끗 보이고...

 

 

 

 

 

 

 

 

 

 

 

 

 

 

 

 

수고했소~ 행님~~ 그리고 한선수~~

강선수도 한마디 한다. 이렇게 쉽고 편하게 천왕봉에 오른건 처음이라고~~

 

 

 

중봉도 알록달록...

 

 

 

중산리계곡 쪽은 더 화려하다.

오늘 비록 맑은 날씨는 아니어도 이정도로 내눈이 호사를 누리게 해준데에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멋진 풍경을 나한테 내어준 지리, 내 힘으로 걸어서 여기까지 오게해 준 두다리, 누군가 예상한대로 깝깝할 때도 있었지만 그래도 많은 이야기거리와 추억을 만들어 내며 동무해 준 세분, 또 그리고 블라블라블라... 모든 것에 감사하고 저 아래 보이는 풍경만큼 마음이 너그러워지게 만드는 것은 산의 마법이다.

 

 

 

 

마지막 남은 과일을 털어내고, 예전에 워낙 고생을 했던 중산리 하산길을 독한 마음으로 지옥문 들어서듯이 내려선다.

 

 

 

 

 

 

 

 

 

 

워낙에 각오를 단단히 해서일까? 아니면 하산길 단풍길이 예뻐서였을까?

어느덧 로타리대피소에 도착했다.

커피 한잔씩 끓여 마시고, 이젠 단풍도 보이질 않으니 부지런히 하산만 하면 되는데 마침 시원하게 비가 흩날린다.

젖지는 않으면서 딱 시원할 정도로....

 

전날 점심에 먹으려고 했던 비밤밥을 하산해서 먹으며 막걸리도 한잔씩~~

다들 만족스러운 산행이었던 것 같다. 나 또한 더없이 좋았고~~~

기분이 좋았는지 연거푸 막걸리를 들이키더니 차안에서 맥주도 한캔 마시고는, 하필이면 또 조수석에 앉아서 술냄새 폴폴 풍기며 뭐라는지도 모를 강선수의 횡설수설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죽암휴게소이다.  안선배가 미리 예상했던 강선수의 화장실 갈 시간이었다.

그리고 또 상남자들만의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금방 서울이고, 우리 상남자들은 이 시간에 집에 가서 밥달라고 하면 천상여자인 마눌님한테 맞아 죽을 수도 있다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어 깔끔하게 저녁까지 다 해결하고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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