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화대종주 - 3일차, 4일차

2010. 9. 9. 15:40산행일기

*********** 3일차 ****************

 

오늘 하루는 통제가 풀릴 가능성이 제로이니, 꼼짝말고 대피소 안에만 머물라고 대피소 직원이 엄포를 놓는다.

근데, 하산을 하고 싶으면 그건 안막겠다고 하는데....하산길이 장터목가는 길보다 안전한가???

 

나와 함께 세석에 머물고 있는 사람은 27살이란다.

직업을 물어보니 공부를 한단다. 대학생이나 대학원생은 아닌데, 군대 다녀와서 공부를 한다는데...도무지 뭔지 모르겠다.

 

어쨌든, 그 친구... 얼마 전에 자기 친구들이랑 동네 산에 가 봤는데 재밌는거 같아서 그 친구들과 2박3일 종주를 오기로 했는데 다른 친구들은 펑크를 내고 혼자 온 거란다.  완전 무모하기 이를 데가 없다.

스틱도 없고, 장비도 엉망인데 젊음 하나로 종주를 이어나가는 것을 보니 대단하다는 생각 밖에 안든다.

가져온 음식도 컵라면과 햇반 밖에 없단다. ㅋㅋㅋ

 

 

레테님한테 대접하려던 김치찌개거리를 꺼내서 참치와 햄, 라면사리까지 넣어서 찌개를 만들고 밑반찬 몇가지 꺼내서 같이 먹자고 하니, 그 친구 정신 못차리고 먹어댄다.

이 순간 이후로 그 친구...나를 엄홀길에 버금가는 산악인으로 떠받들기 시작한다.

뭐.. 어차피 둘 밖에 없는데... 산악대장 행세를 하는 것도 재미난다. ㅋㅋㅋ

피터팬님한테서 주워들은 이야기와 블로그에서 본 내용들을 적당히 섞어 가면서, 구라를 푸는 것도 좀 하니까 익숙해져서 점점 뻥이 더 세진다.

설악 공룡이 어쩌고...덕유 육구종주가 저쩌고... 

 

세석의 명물, 전망 화장실에서 내다본 장면...

 

노니 뭐하나....

왔다 갔다 하면서 사진이나 찍고 놀아야지.

 

10미터 앞도 안보이는, 자욱한 안개 속에 들어가서 식수대물과 그 옆을 흐르는 빗물에 홀딱 벗고 샤워를 하니...그 기분 또한 말로 표현할 수가 없이 좋다.  이제 야인생활에 적응되어 가는 것인가?

 

 

 

 

 

이렇게 세석에서 온전한 하루를 보내고...

저녁쯤 되니, 대피소 직원이 내일 아침 4시에 통제가 풀릴 것이라는 소식을 전해 온다.

태풍이 지나간 후의 환상적인 촛대봉 일출을 기대하면서 잠자리에 들지만, 자꾸만 몸이 뒤척여진다.

 

 

******** 4일차 ************

 

촛대봉 일출을 보기 위해 5시30분에 출발을 맞추어 놓고, 일어나 밖을 내다 보는데....

맥이 쫘악 풀린다.  또 비가 내리고 있다.

이번 종주길에는 해 보는 것을 포기해야 하나?  반야봉부터 비와 구름 속만 걸었는데... 야속한 생각이 자꾸만 든다.

어쨌든, 오늘 종주를 마쳐야 하기에 길을 나선다.

 

장터목 가는 길에 발견한 하트모양 돌맹이.

종주 전날 몸보신 시켜주신 하트 매니아, 솔맨님께 바친다.

 

 

갈 데까지 간 꼬재재한 모습....

 

 

 

제석봉 올라가는 길에 만발한 구절초 무리.

 

제석봉 전망대...아무도 없다.

 

 

 

드디어 천왕봉 정상, 그런데 여기도 아무도 없다.

한 30여분을 별 짓을 다하면서 있어도 오가는 사람이 없다.

 

이제 대원사를 향해 하산을 시작한다.

말이 하산길이지...중봉, 써리봉을 비롯해서 몇개의 봉우리를 넘어 다닌다.

 

 

 

 

중봉을 지날 무렵 쯤인가?

고도가 낮아지면서는 다시 전망이 트이고, 햇살과 구름이 보이기 시작한다.

 

 

 

 

 

한참을 걸려서 도착한 치밭목대피소.

비빔면을 해먹으려니 찬물에 면을 헹구기도 마땅찮고 해서, 라면 한개 천오백원에 사서 끓여 먹고는, 내가 가지고 있던 비빔면은 거저 주고 왔다.

 

치밭목 이후로는 계곡의 지리 지리한 너덜길이 계속된다.

 

 

 

 

드디어 세상으로 나가는 문에 도착했다.

왠지 나가기가 아쉬워서 한참을 머뭇거리며 쉬다가 바깥세상으로 발을 내딛는다.

 

유평리에서 대원사로 내려가는 길은 포장도로로 길 옆으로는 거의 강물 같은 계곡물이 흐른다.

 

 

대원사에 도착하여 담벼락을 따라 한바퀴 둘러 본다.

 

대원사 대웅전.

 

대원사 앞에서 물 한바가지 마시고는 미리 불러놓은 택시를 타고 원지로 나가며 기나긴 지리산 화대종주를 마친다.

 

택시기사님한테 원지에 있는 목욕탕이나 사우나에 내려달라고 했는데 문이 닫혔다.

몸에서는 빗물과 땀이 섞여 썩은 냄새가 폴폴 올라오는데...이대로 버스를 탔다가는 완전 민폐다.

 

할 수 없이, 근처의 모텔에 가서 대실료를 물어보니 2만원을 달란다. 촌동네가 모텔비는 더 비싸다.

내가 우리 산악회 산행대장인데, 내 블로그에 이 모텔사진 올리면 지리산 오는 사람들 다 여기로 올거다...라고 구라를 치고 5천원을 깍아 입실해서 따뜻한 물에 샴푸와 바디클린저로 몸을 씻으니 너무나 행복한 느낌을 받는다.

난...어쩔 수 없는 속세인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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